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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다, 고치다, 지키다ㅣ구겨 신은 신발과 학교의 숨은 노동ㅣ희정

깡총이87 2025. 11. 2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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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다 고치다 지키다 - 희정

 

학교 앞이나 지하철에서 한 번쯤 봤을 풍경이 있다.
운동화 뒷부분을 접어서 슬리퍼처럼 신고 다니는 학생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딱히 뭐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요즘 스타일인가 보다” 하고 그냥 지나치는 편이었다.
좋다, 나쁘다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그저 배경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 가까웠다.

 

그런데 희정의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를 읽고 나니,
이 익숙한 풍경이 다시 떠올랐다.


같은 신발인데, 그걸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에 따라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com/shorts/K82EsVkQx3M?feature=share

 


신발을 구겨 신은 아이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신발을 구겨신은 학생을 보면
그것이 자유로운 성격 때문인지, 발에 맞지 않는 신발 치수 때문인지 헤아린다.” – 220쪽

 

같은 장면을 보고도,
어떤 어른은 이렇게 생각한다.

  • “요즘 애들 참 자유분방하다.”
  • “태도가 좀 성의 없네.”

하지만 다른 어른은 한 번 더 생각한다.

  • “혹시 신발 사이즈가 맞지 않는 건 아닐까?”
  • “집안 형편상 당장 새 신발을 사기 어려운 건 아닐까?”

신발 뒷부분이 접혀 있다는 사실은 똑같다.

 

그걸 ‘태도’의 문제로만 볼지,
‘사정’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길지는
전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몫이다.

 

희정이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에서 보여주는 건
이 “한 걸음 더 생각해보는 시선”이다.


돌본다는 것, 지킨다는 것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이런 작은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걸
구겨 신은 신발 한 켤레를 통해 조용히 보여준다.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 책표지


학교를 떠받치는 이름 없는 손들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학교의 얼굴”에서 한 발 비켜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 돌봄전담사
  • 급식실 조리사와 영양사
  • 행정실 직원
  • 시설관리인, 특수학급 보조 인력 등

이 사람들은 학교를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늘 뒤에 서 있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학생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선생님'을 부르며 자신을 찾았지만
교사들은 그를 실수로라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 48쪽

 

아이들에게 그는 분명 ‘선생님’이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돌봐주고, 챙겨주는 어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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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끝내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는다.


호칭 하나지만, 그 안에
학교 안 위계와 노동의 서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선생님으로 받아들이는데,
정작 “교육”을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동료 노동자를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 장면은
읽는 내내 씁쓸하게 남는다.


급식실과 돌봄 교실, 우리가 잘 모르는 노동의 현장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급식실 이야기였다.

“단체 급식이라고 해도 교실 배식이나 식당 배식이나,
초등학교냐 고등학교냐에 따라 다 달라요.
표준 레시피가 있어도 그것대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 67쪽

 

우리는 그저 “급식 나온다”는 사실만 알고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한 끼 식사가 나오기까지는
학생 수, 동선, 교실 배식 여부, 시간표, 예산, 인력 등
수많은 변수가 촘촘히 얽혀 있다.

“영양사가 급식실 전기공사 관리부터
조리사 결원 시 조리 업무에까지 투입되는 것이 현실이다.” – 73쪽

 

영양사는 메뉴를 짜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급식실의 총괄 관리자에 가깝다.


행정, 시설, 인력 공백까지 함께 떠안고 있으니까.

또한 방과후 돌봄 교실에서 일하는 돌봄전담사 역시 마찬가지다.

“돌봄전담사를 학교 수업을 마친 후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이고 놀아 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 50쪽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냥 아이들 좀 봐주는 역할”로 축소될 수 없는
감정 노동, 책임, 안전 관리의 무게가 잘 드러난다.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모인다.

학교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채로운 곳이다.
학생 수는 줄었지만, 학교가 하는 기능은 늘어만간다. – 152쪽

 

기능이 늘어날수록 필요한 인력도 늘어나고,
그 자리를 메우는 방식은 대부분 비정규직과 낮은 처우다.

 

아이들을 위한 제도와 프로그램 뒤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노동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끈질기게 보여준다.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


학교를 지나온 어른에게 필요한 공부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를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건 “학교는 이미 지나온 공간”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보통 학교를 이렇게 기억한다.

  • 교실, 담임선생님, 친구들
  • 수업, 시험, 급식
  • 가끔 떠오르는 사건 몇 개

하지만 이 책은 그 기억 사이사이에
“누가 이 학교를 굴리고 있었는지”를 끼워 넣는다.

  • 교실 불이 켜지는 순간부터
  • 급식이 준비되고 치워지기까지
  • 방과후, 교실 문이 잠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시간들을 지키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인터뷰와 기록의 형태로 묵묵히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보다 오히려
“학교를 이미 졸업한 어른에게 더 필요한 책”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요즘 애들”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
한 번 더 멈춰서
그 아이의 사정과 배경을 떠올려보는 것.

 

우리가 “교사와 학생”만 떠올리며 학교를 이야기할 때,
그 사이를 지탱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돌봄 노동자들의 삶을 함께 떠올려보는 것.

 

이건 아이들을 위한 교육 못지않게
어른들을 위한 공부이기도 하다.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를 읽고 나서 남은 질문

책을 덮고 나서,
구겨 신은 신발 한 켤레가 자꾸 떠올랐다.

 

“나는 누군가의 신발을 볼 때,
얼마나 자주 그 사람의 사정을 함께 떠올려보았을까?”

 

누군가의 태도만 보고 쉽게 판단해버리진 않았는지,
학교라는 공간을 떠올릴 때
여전히 교사와 학생만 떠올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는
학교를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자,
어른의 시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 전체표지

교사와 학생 뒤에 가려진, 학교를 ‘진짜’로 굴러가게 만드는 얼굴들을 비로소 보게 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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